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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기...

냄비의 얼굴은 반짝인다...

애써 마음 비워두기...

 

출근길에 생뚱맞게 생각난 시...

그 시절의 어렸던 소녀는 이 시를 이해해던 것일까...

 

참 이쁜... 가을이다...

 

 

 

냄비의 얼굴은 반짝인다

송유미

 

산더미같이 쌓여진 그릇을 씻기 위해 개수대 앞에 선다

밥공기들을 하나 하나 '퐁퐁'을 묻혀 닦아내다가

문득 씻지도 않고 쓰는 마음이 손바닥에 만져졌다

먹기 위해 쓰이는 그릇이나 살기 위해 먹는 마음이나

한 번 쓰고 나면 씻어두어야

다음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이라 싶었다

그러나 물만 마시고도 씻어두는 유리컵만도 못한 내 마음은

더럽혀지고 때묻어 무엇 하나 담을 수가 없다

금이 가고 얼룩진 영혼의 슬픈 그릇이여,

깨어지고 이가 빠져 쓸 데가 없는 듯한 그릇을 골라내면서

마음도 이와 같이 가려낼 것은 가려내서

담아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누룽지가 붙어서 좀처럼 씻어지지 않는 솥을 씻는다

미움이 마음에 눌어붙으면

이처럼 닦아내기 어려울까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는 주전자를 보면서

씻으면 씻을수록 반짝이는 찻잔을 보면서

영혼도 이와 같이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게 할 수는 없는 일일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릇은 한 번만 써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뼈속까지 씻으려 들면서

세상을 수십 년을 살면서도

마음 한 번 비우지 못해

청정히 흐르는 물을 보아도

때묻은 情을 씻을 수가 없구나

남의 티는 그리도 잘 보면서도

제 가슴 하나 헹구지도 못하면서

오늘도 아침 저녁을 종종걸음치며

죄 없는 냄비의 얼굴만 닦고 닦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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